시코쿠 88 사찰 순례: 오헨로

오헨로는 시코쿠 순례길을 뜻하는 옛말로, 약 1200년 전에 쿠카이 대사가 다녔던 88개의 성지를 도는 여행입니다. '코보다이시'로도 알려진 쿠카이 대사는 진언종의 창시자이며, 고야산에 본당을 세웠습니다.

순례길은 시코쿠를 한 바퀴 도는 형태로, 섬의 네 개 현을 모두 통과하며 1400km가 넘습니다. 순례를 마친 사람들은 속세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발로 걷는 육체의 수행 외에도 마음의 여행이라고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다만 이 순례길을 걷기 위해 불교도가 되실 필요는 없습니다. 종교나 국적에 상관없이 쿠카이 대사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순례자들은 걷는 것이 전통이지만, 뭘 타고 갈지, 어느 성지를 골라서 갈지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걷는 데 필요한 장비들을 갖추는 순례자들도 많지만, 순례자의 지팡이와 전통적인 하얀 겉옷, 삿갓을 쓰면 순례자다운 기분이 듭니다.

고치의 자연은 1200년 전 쿠카이 대사가 지나갔던 당시 풍경과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로토 곶이 특히 쿠카이 대사와 인연이 깊은데, 이는 대사가 곶 근처 미쿠로도 동굴에서 수행을 하고 신메이쿠츠 동굴 옆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쿠카이 대사의 이름을 딴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도 있고, 쿠카이 대사가 몸을 씻었다는 교즈이노이케 연못과, 눈병을 고쳐준다는 메아라이노이케 연못도 있습니다. 무로토 곶 주변의 산책로를 걷다보면 둘 다 보실 수 있습니다.

전설 속 명소들을 모두 보셨다면 순례길의 24번째 사찰이자 고치 지역 오헨로의 첫 번째 사찰인 호츠미사키지에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순례길에 만나는 사찰은 모두 순례자와 일반 관광객들의 마음을 흔드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만, 고치 지역에서는 그 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은 두 곳이 있습니다.

31번째인 치쿠린지 사는 고치 시에 위치해 있으며,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정문을 지나면 이끼 깔린 길이 방문객들을 환영하고, 정원은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싱그러운 녹색 잎의 바다, 가을에는 붉고 노란 단풍으로 일 년 내내 가득차 있습니다. 약간의 요금을 내면 복도를 통해 650년 전에 선승 무소 코쿠시가 만든 정원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이와모토지는 순례길의 37번째 사찰이며, 내전의 천장화가 특히 볼만합니다. 1978년에 수리하면서 일본 전역의 예술가들로부터 575점의 그림을 받아 천장을 장식했습니다. 일본화, 수채화, 유화, 콜라주 등 부처와 꽃 같은 전통 문양부터 마릴린 먼로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천장화의 주제는 실로 다양하죠!

슈쿠보는 승려와 순례자들을 위해 사찰 내에 마련한 숙소입니다. 보통 에어컨이 딸린 단촐한 일본식 방을 제공하고, 아침식사와 저녁이 포함됩니다. 또한 하루 종일 걸어온 분들을 위해 맥주 같은 술도 제공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사찰에서 숙박할 때 재미있는 점은 오츠토메라고 불리는 아침, 때로는 저녁 예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불을 드리는 동안에는 사찰 본당 안에서 스님과 함께 불경을 읊을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은 보통 본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모토지 사찰에서는 새벽 6:00시부터 시작해 30분간 진행되는 오츠토메에 무료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알파벳으로 발음을 표시한 경전이 있어서 일본어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물론 불경을 꼭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향이 피어오르는 고요한 본당에서 울리는 깊고 경건한 염불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순례길에 사찰에서 불공을 드리는 순서는 세 단계입니다. 혼과 마음을 다해 순서를 따르며,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곧은 마음을 지니는 게 더 중요합니다.

1. 몸과 마음을 깨끗이
사찰 정문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머리 숙여 인사합니다. 경내로 들어가면 손과 입을 씻을 곳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종을 울리는 것이 허용되는 사찰이라면 종을 한 번 치시면 됩니다.

2. 본당과 보살전에 인사를 드립니다.
초와 향에 불을 붙입니다. 전용 함에 봉헌했음을 나타내는 종이인 오사메후다를 넣습니다. 그 뒤에 시주함에 동전을 시주합니다. 정해진 금액은 없지만 보통 5엔과 10엔 동전을 가장 많이 시주합니다. 두 손 모아 합장한 뒤에 3번 절합니다. 기도를 하거나 법문을 읊은 다음에 다시 합장하여 한 번 더 절합니다. 본당과 보살전에 들어갈 때 같은 과정을 반복합니다.

3. 고슈인(사찰 수인) 받기
고슈인은 어떤 사찰에 들러 기도를 드렸다는 걸 증명하는 손수 쓴 서명입니다. 이 수인을 모은 작은 책을 '고슈인초'라고 부릅니다. 가지고 있는 본인의 고슈인초에 스님의 수인을 받는 데는 500엔이 필요합니다.

시코쿠 88 사찰 순례에 속한 사찰 중 16곳이 고치 현에 있습니다. 사찰로 가는 방법을 확인하시려면, 시코쿠 교통과 관광부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